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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고 - 교사로서의 소감

미주동석스 2022. 8. 10. 14:09

뭘 해야 할지, 뭐가 중요한 것인지, 난 뭘하고 있는지를 잘 모를 때 가볍게 본 책 한권, 영화 한편이 그 해답의 힌트를 줄 때가 있다. 내게 이 영화 한편이 그런 의미를 주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북한의 유명한 수학자가 학문의 자유를 위해 남한으로 내려왔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상위 1%가 모인다는 자사고에 경비로 근무하면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과 치유를 한다는 맥락이다. 이 영화가 누구나에게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겐 큰 울림을 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수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일까? 수학의 어떤 점이 매력이 있을까? 수학을 잘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가?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내가 동경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등등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최근에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질문이 떠올랐던 영화가 있었나 싶다.

 

난 어느덧 20년의 경력을 눈 앞에 둔 교사이다. 최근에 다양한 교육 환경에 변화, 학생의 요구, 학부모의 요구 등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난 어떤 모습으로 늙고 싶은지, 졸업을 앞둔 애들의 머리속에 어떤 이미지를 남겨 놓고 싶은지에 관해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고 답을 내지 못한 채 하루 하루 나름의 최선을 다해 지내고 있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게으른 적도 없으니 이정도면 되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지내고 있었다.

 

뭔가 열심히 하지만 하루하루가 막 보람되진 않은 그런 일상들이 최근 이어지고 있었지만 뭐 이 맘때는 원래 그런가 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 속 이학성(최민식)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명과학의 교사가 되면서 다짐했던 것은 내가 느끼는 생명과학의 재미를 아이들도 느끼게 해주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전경을 아이들도 바라볼 수 있도록 보는 법을 알려주자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초임때의 그런 멋진 다짐을 얼마나 해왔지? 그리고 방법은 알고 있나? 다양한 시도는 해보았나? 그리고 20년에 가까운 시절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난 뭐가 늘고 있을까? 지금의 내 지식을 가지고 초임 발령때로 돌아간다면 초임 시절의 나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가 될 순 있을까? 좋은 교사는 뭘까? 내가 나이가 더 들어서 50이 되어 교단에 서면 어떤 얼굴 표정과 말투를 가져야 할까?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매는 어때야 하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는 영화였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찾아야겠지만 잊고 지냈던 질문이 떠오르는 것 만으로 기분이 묘하다. 

 

언제나 그렇듯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좋은 질문이 중요한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스로에겐 좋은 질문을 많이 안겨준 영화였다. 좋은 질문에는 좋은 답이 따라 오니까 앞으로 좋은 답을 찾아갈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5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어떤 선생님의 모습이 좋을까에 대한 답은 확실히 찾았다. 바로 아이들과 학문적 대화를 하며 동료가 되는 것이 내가 찾은 답이다.

 

아이들과 세상을 산 시간이 달라지는 것 만큼 시간이 지나면 거리감이 생기겠지만 생명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동질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같이 성장하는 그 경험이 내가 그리는 모습이 확실한 듯 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자 좀 더 늙은 나의 얼굴 이미지가 그려지고. 어떤 표정으로 애들을 대하고. 애들과 수업을 할 때 어떤 어투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갈지에 대한 답안이 그려진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의 틀을 벗어나 더 멋진 어른이 되고 더 많이 성장하여 나를 찾아와서 지금 세상의 과학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본인이 하고 있는 과학의 영역은 어디인지 등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여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야 함은 물론이다.  

 

심심해서 틀어본 영화가 앞으로 나의 10년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것 같다.